탄허 허공을 삼키다: 시대의 선각자 탄허 큰스님의 생애와 오대산 불교 이야기
자현
출간일 : 2013-04-15페이지 : 264쪽판형 : 신국판변형 무선ISBN : 9788998742058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씻기지 않는 이름 탄허, 그리고 탄허 스님을 품은 오대산 불교 이야기
“탄허 스님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스님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후인後人의 필연이다. 그것은 슬픔에 대한 추념이 아니라,
그 정신을 되새겨 보려는 기쁨에 대한 모색이다.”
탄허 스님은 지워지고 가려질 수 없는 시대의 선지식이었다. 밤하늘의 모든 별들이 회전하지만 북극성은 고요 속에서 밝은 빛만을 토해내듯이, 탄허 스님은 그런 북극성과 같은 우리민족의 시대정신이었다. 2013년은 20세기 한국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고승, 대석학 탄허 스님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탄허 허공을 삼키다]는 스님의 원력과 가르침, 업적을 되살려 ‘탄허학(呑虛學)’을 정립하여, 미래의 꿈과 좌표로서 한국불교 발전의 바탕으로 삼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발간되었다. 한국불교는 탄허 스님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 스님의 헌신적인 노고가 없었다면, 불교교육의 안정과 불교 발전은 더욱더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탄허 스님은 오대산에서 입산하여 수행하고, 시대의 선지식이었던 한암 스님의 가르침과 사상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오대산에서 수도원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는 등 스님의 활동은 오대산을 떠나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책의 중반까지는 스님의 생애와 시대정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였고, 중반 이후부터는 오대산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어 탄허 스님이라는 큰 그릇을 품을 수 있는 오대산의 문화적인 배경과 그 깊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탄허 스님의 가르침, 시대를 초월한 사회적 문제의 열쇠
스님은 일제강점기에서 군부독재에 이르는 질곡의 세월을 사셨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한국불교의 화엄정신과 교육이념을 주창하신 선구자였다. 또 우리나라가 너무나도 가난하고 암울했던 시절과 군부독재라는 슬픈 현실 속에서, 우리국민을 북돋고 힘이 될 수 있도록 보듬어준 진정한 불교인이었다. 탄허 스님은 불교와 우리나라의 발전과 도약을 위한 대원력을 세우고 평생을 실천한 보현보살이었다. 그리고 우리 시대, 민족의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서 평생에 걸쳐 화엄을 말씀하신 화엄학의 대종주(大宗主)이다. 탄허 스님은 화엄사상을 원융하여 재가와 출가의 회통, 그리고 교육을 통한 이 나라의 계몽운동에 앞장서셨다. 또 승속을 막론하고 민중을 먼저 생각하는 가르침을 베풀었다. 이는 스님의 불교가 단순히 불교를 넘어선 국가적인 관점의 교화였기 때문이다. 스님은 동양학 속에서 우리나라를 보고, 불교의 화엄사상 안에서 동양학을 보았다. 이는 오늘날의 학문하는 사람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참으로 거시적 안목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탄허 스님이 태어나신지 100년, 열반하신지도 벌써 30년이다. 스님은 가셨지만 스님의 가르침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퇴색되지 않고 여전히 우리에게 갈 길을 알려주고 있다. 이 시대의 불교가 탄허 스님을 그리워하는 이유이다.
-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 평등 정신
모든 불교의 위대성을 부정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으로 불교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평등’과 ‘여성에 대한 인정’이다. 이 점은 그 어떤 종교나 철학과 비교될 수 없는 불교만의 독보적인 우월성이다. 탄허 스님은 부처님의 이러한 부분을 적극 수용하셨다. 여성이 약한 존재로서 억압받던 시절, 탄허 스님은 단연코 여성의 편에 서셨다. 이는 쉽게 권력에 의지하고, 시류에 편승하는 중생의 경계를 넘어서는 위대한 보살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오늘의 불교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스님의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 평등 정신인 것이다.
-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사상
법계연기사상은 우주의 모든 존재, 즉 일체만물은 법계(이 세계) 속에서 각각 자기의 고유한 자성(自性)을 가지고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 조화롭게 공생, 공존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탄허 스님이 역설(力說)했던 화엄의 법계연기사상은 오늘날의 사회적인 제 문제, 즉 지역 간 계층 간의 갈등과 대립을 비롯하여 이념적, 정치적인 문제, 그리고 세대 간의 문제를 단 하나도 배척하지 않고 그대로 공존,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고 하겠다. 또 다양성과 특수성이 공존하고 있는 글로벌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대승보살의 실천원력, 이 나라의 등불이 되어
탄허 스님은 선과 교(敎)라는, 불교의 깨달음에 이르는 두 가지를 길을 고르게 겸비하신 분이다. 그러나 스승인 한암 노사가 선 수행을 중심으로 교(敎)를 전개하신 분이라면, 탄허 스님은 교학을 중심으로 하는 선자(禪者)였다. 이는 스님의 시대가 불교의 혼란기이자, 이 나라의 과도기로서 교육을 통한 계몽이 가장 절실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만일 탄허 스님이 오늘날과 같은 보다 안정된 사회를 사셨다면, 스님은 선적인 깨달음에 고요히 잠기셨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이 사신 격동기는 국가와 민중을 위해서, 누군가는 떨치고 일어나 계몽을 해야만 하는 시대였다. 이를 위해서 스님은 보현보살과 같은 원력으로, 이 나라와 불교를 위한 등불이 되어 당신을 철저하게 산화했다. 이것이야말로 민중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승화하는, 대승보살의 강력한 실천서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 유일의 불교 성산, 문수성지 오대산 탄허 스님을 품다.
탄허 스님을 말하면서 오대산을 지나칠 수는 없다. 오대산은 스님을 품었으며, 스님은 결국 스승이신 한암 스님처럼 오대산인(五臺山人)으로 거듭나는 인생을 걷게 된다. 이런 점에서, 스님의 생애와 더불어 오대산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정리해 보았다. 이는 보다 넓은 시각으로 전체를 조감하게 한다는 점에서 ‘홍운(紅雲)’ 같은 의미가 된다.
오대산은 산 전체가 문수성지로 규정된 남한 유일의 불교 성산(聖山)이다. 또 그 속에는 비단 불교만이 아니라, 사고(史庫)와 같은 유교문화와 성오평(省烏坪)이라는 무교의 성지, 또 한무외로 대변되는 신도교(新道敎)와 선도(仙道)문화도 존재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오대산은 동양학의 전반을 아우르는 최고의 사상공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또 이외에도 율곡에 의해서 비롯된 소금강(小金剛)과 전나무 숲 길, 그리고 차 문화의 시작과 한강의 시원과 같은 다양한 문화영역도 확보하고 있다. 이는 오대산이 국내 최고의 복합유산의 성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장 율사가 개산한 이래로, 이러한 찬란한 인문과 자연적인 전통이 존재했기 때문에 오대산은 탄허 스님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탄허 스님은 다시금 오대산으로 회향되어 진정한 오대산의 별로 천화(遷化)한 것이다.
정가 13,5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