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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수초어록

저자·역자동산수초 저 / 영곡 역정가25,000
출간일2019-11-20분야
책정보페이지: 288판형: 신국판 양장ISBN:979-11-89269-42-5(9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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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위로 가기 ‘마삼근’ 화두로 유명한 동산 수초 선사의 어록
국내 최초로 완역 출간!


1. 동산 수초 스님의 행장
동산 수초(洞山守初) 스님의 선맥 계보는 이렇다. 육조 혜능(六祖慧能)-청원 행사(靑原行思)-석두 희천(石頭希遷)-천황도오(天皇道悟)-용담 숭신(龍潭崇信)-덕산 선감(德山宣鑑)-설봉 의존(雪峰義存)-운문 문언(雲門文偃)-동산 수초. 스님은 후량(後粱) 태조 개평(開平) 4년(910) 봉상부(鳳翔府)의 양원[良原: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숭신현(崇信縣)]의 부씨(傅氏) 집안에서 태어나셨다. 어렸을 적에, 한번은 멀리 절에서 들려오는 범종 소리를 듣자 문득 먹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허리를 꼿꼿이 한 채로 하루 종일 앉아 있기만 하셨다. 그의 어머니 여씨(呂氏)는 이러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서도 일부러 음식을 주지도 않을 뿐더러 부르지도 않았다. 나이가 16살이 되자, 어머니 앞에 꿇어앉아 출가를 간절히 부탁하여 흔쾌히 허락을 받아 내셨다. 그래서 짐을 싸서 위주[渭州: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공동산(崆峒山)으로 가서 지심(志諗)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머리를 깎으셨다. 그리고는 경주[涇州: 감숙성(甘肅省)]의 사리율사(舍利律寺)로 가서 정원(淨圓) 스님에게서 구족계를 받으셨다. 스님께서 출가한 절은 율종에 속하였던 터라 처음에는 율장을 익히는 데 공력을 들이셨다. 하지만 스님에게는 그다지 흡족한 공부가 아니라고 여겨 행각을 다니기로 하셨다. 그리하여 함양(咸陽)과 장안(長安), 양양(襄陽), 장사(長沙) 등을 전전하다가 지금의 광동성 유원현(乳源縣) 북쪽의 운문산에 이르렀다. 거기서 하안거를 성만하고서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스님을 찾아뵈었다.

운문 스님이 물으셨다. “근자에 어디를 떠나왔느냐?”
스님이 말씀드렸다. “사도입니다.”
운문 스님이 말씀하셨다. “여름에 어디에 있었고?”
스님이 말씀하셨다. “호남의 보자사(報慈寺)입니다.”
운문 스님이 말씀하셨다. “언제 거길 떠났나?”
스님이 말씀드렸다. “8월 25일입니다.”
운문 스님이 말씀하셨다. “너를 세 방 때려야겠다.”
스님이 순간 멍하니 있다가 저녁이 되자 다시 찾아뵙고 여쭈었다. “오늘 대답하고서 큰스님께 세 방 얻어맞았는데 도대체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운문 스님이 말씀하셨다. “밥통아! 강서와 호남을 바로 이렇게 따지는 거냐?”
스님이 말끝에 확연대오하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이후에 인가가 없는 곳에 암자 하나를 우뚝세워 놓고서, 한 톨의 쌀도 모아 놓지 않고 채소 한 포기조차 심어 놓지 않고서도 온 천하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접대하되, 그들에게서 몽땅 못을 빼고 쐐기를 뽑아내 주며, 기름때에 찌든 모자를 벗겨버리고, 액취 나는 저고리를 벗겨주어서, 그들을 쇄쇄낙락한 납승이 되게 할 것이니, 어찌 통쾌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운문 스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몸은 야자 만한데, 입은 엄청 크게 벌리는구나!”

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동산삼돈(洞山三頓)’의 화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 후 후한(後漢) 은제(隱帝) 건원(乾祐) 원년(948)에 운문산을 떠나 양양의 동산사(洞山寺)로 가셨다. 이후로 40여 년을 이곳에 주석하셨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 절에 머물고 계셨지만, 그 도는 천하에 두루 전해져서 수많은 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태평흥국 6년(981)에 상서인 석공(石公)과 양수(襄帥)인 조공(趙公)이 황제에게 글을 올려 동산스님의 뛰어난 도행을 알리고 아울러 나라를 교화하여 성인의 교화를 더욱 두터이 했음을 알려 주었다. 그러자 북송 조정에서는 종혜선사(宗慧禪師)라고 시호를 드리고 자색 가사를 드림으로써 당간의 깃발을 뛰어나게 하였다. 아무런 병환도 없다가 송 태종 순화 원년(990) 가을 7월에 결가부좌를 한 채 세수 81세, 법랍은 65하로 원적에 드시었다.

스님의 법을 이은 제자로는 복엄 양아(福嚴良雅)·보자 도숭(報慈道嵩)·담주 도숭(潭州道崧)·건명 목(乾明睦)·개복 덕현(開福德賢)·광제 원동(廣濟院同)·복창 현(福昌賢)·황매 용화상(黃梅龍華祥)·연복 처경(延福 處瓊)·동평 홍교(東平洪敎) 등이 있다.
‘동산마삼근(洞山麻三斤)’, ‘동산삼돈(洞山三頓)’, ‘동산오대(洞山五臺)’, ‘동산친절(洞山親切)’, ‘동산지연(洞山紙撚)’, ‘동산전사(洞山展事)’ 등의 공안이 있다.

『양주동산제이대초선사어록(襄州洞山第二代初禪師語錄)』 1권이 『고존숙어록』 권38에 실려 있고, 『경덕전등록』 권23, 『선종송고련주통집』 권36, 『불과격절록』 제38칙, 『정법안장』 권1상, 『연등회요』 권26, 『선문염송집』 권27, 『대장일람집』 권10, 『오등회원』 권15, 『선림승보전』 권8, 『오가정종찬』 권4, 『선림유취』 권14, 『교외별전』 권12, 『불조강목』 권34, 『선종정맥』 권8, 『지월록』 권21, 『종감법림』 권51, 『종문염고휘집』 권38, 『어선어록』 전집 하, 『오등전서』 권31 등에 그의 어구와 기연이 보인다.


2. 동산 스님의 도풍

본 어록에 나오는 일자관(一字關)이 9개 정도 나오는 것을 보면 운문 스님의 맥을 이은 선사답게 동산 스님은 예리한 금강단검(金剛短劒)을 신중하게 휘두르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동산 스님이 기요(機要)로 사용하는 일구(一句)의 면모를 살펴보면 정교하면서도 간결함이 돋보이며, 활용하는 활구는 압축미가 철철 넘쳐난다. ‘마삼근(麻三斤)’, ‘증병온당(蒸餅搵餳)’, ‘소지풍혈지우(巢知風穴知雨)’, ‘두팔포삼(竇八布衫)’, ‘안리동인취목적(眼裏瞳人吹木笛)’, ‘염리방목아(炎裏放木鵝)’, ‘지연무유(紙撚無油)’, ‘달마무당문치(達磨無當門齒)’ 등의 몇몇 공안만 살펴보아도 이런 특성이 눈에 쉽게 띌 것이다. 본 어록에서는 스님의 이러한 특성을 갖추어 기용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정교한 도풍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어록에는 법거량 문답이 다수 실려 있는데, 이를 보면 그가 얼마나 친절하고도 정성스럽게 몸소 학인들을 점검하고 살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13회의 상당법회 가운데 275회의 상량 문답 거량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것이 부처님이냐?”라는 물음에 대한 동산 스님 이전의 답화를 살펴보자.

“알지 못하는 이는 누구냐?[不識者是]”(제11조 부나야사)
“바로 마음이 부처님[卽心是佛]”(남양 혜충, 마조 도일)
“맑은 못에 비치는 얼굴은 부처님이 아니면 누구냐?(淸潭對面非佛而誰)”[대주 혜해]
“다시는 따로 구하지 마라.[更莫別求]”(자옥 도통)
“너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不可道爾是也]”(남원 도명)
“너는 누구냐?[汝是阿誰]”(백장 회해)
“네 마음이 부처님이다.[汝心是佛]”(황벽 희운)
“중생의 몸이 이것이다.[衆生色身是]”(장사 경잠)
“법당 안에 있는 것[殿裏底], 바로 마음이다[即心是], 무심이다[無心是], 넌 부처님이냐?[你是佛麼], 넌 어떤 사람이냐?[你是什麽人]”(조주 종심)
“바로 네가 이것이다.[卽汝便是]”(귀종 지상)
“흙덩어리다.[土塊]”(엄양 존자)
“혀를 내밀어 보이다.[出舌示之]”(오석 영관)
“때리다.[師打之]”(곽산 경통)
“어떤 것이 부처님이 아니냐?[如何不是佛],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해라[勿使異人聞], 장림산 아래 죽극편[杖林山下竹筋鞭]”(풍혈 연소)
“억![喝]”(소주 영서)
“얼른 삼배나 해라.[速禮三拜]”(삼각 지겸)
“어떤 것이 상좌냐?[如何是上坐]”(단하 의안)
“고양이가 노주에 올라간다.[貓兒上露柱]”(비수 혜성)
“환으로는 구할 수 없다.[幻不可求]”(투자 대동)
“얼굴이 누런 이지.[黃面底是]”(운개 지원)
“멍청한 아이가 아비를 버리고 도망갔다.[癡兒捨父逃]”(반룡 가문)
“돌쇠다.[石牛]”(서암 사언)
“장씨네 아이 셋이다.[張家三箇兒]”(현천 언)
“병정 동자가 와서 불을 구한다.[丙丁童子來求火]”(백조 지원)

뭐 이런 정도다. 이와 같은 답구에다 ‘삼 서 근[麻三斤]’을 실어 보면, 별안간 멍해진다. 구태여 선지식이 기연에 맞추어 제시하는 활구가 아니라도 이 ‘삼 서 근’ 공안은 들어보기만 하여도 의정이 돈발하기 쉬워진다고 하겠다.
스님은 노래한다.

동산은 적막하여
하나마저 있을 수가 없네.
아무런 맛도 없는 구(句)이지만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다네.


3. 어록의 구성

이 『양주동산제2대초선사어록(襄州洞山第二代初禪師語錄)』은 1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卍속장경》 제118책, 『고존숙어록』 38권, p323前b3~331前b14에 수록되어 있다. 이 어록의 전반부는 상당법어(上堂法語)를, 후반부는 가송(歌頌)을 실어서 편집하였다. 여기에는 문답이 포함된 상당법문이 18개 실려 있는데 그 속에는 선문답이 275회 수록되어 있다. 27송의 가송은 거의 제목을 달아서 실어두었다.

이 어록은 각범 혜홍이 저술한 『임간록』에, “내가 건중정국 초(1102)에 오랜 친구 집에서 동산 수초 스님의 어록 한 편을 얻었는데, 복엄 양아 스님이 편집한 것이었다.[予建中靖國之初, 故人處獲洞山初禪師語一編, 福嚴良雅所集.]”라고 나와 있어, 동산 스님의 법제자인 복엄 양아 스님이 기록하고 편집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 미리 보기

1. <상당법문> 중에서 (pp.27~31)

둘.
머리털은 덥수룩, 귀는 뾰족

상당하셨다.

한참 묵묵히 계셨다.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수많은 여러 조사가 법당에 오르니, 인간과 천상에서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종승(宗乘)이 어둡지 않게 스님께서 가리켜 보여주십시오.”
스님이 말씀하셨다.
“머리털은 덥수룩, 귀는 뾰족.”
그 스님이 말했다.
“일구(一句)가 유통되면 인천이 귀를 쫑긋합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검은 장삼을 햇볕에 쬐는구나.”
또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어느 가문의 노래를 하시며, 종풍은 누구를 이으셨습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반복하여 말해도 전혀 더듬거리지 않는다.”

上堂. 良久. 有僧問: “列祖昇堂, 人天堅請, 不昧宗乘, 乞師指示.” 師云: “頭鬅鬙, 耳卓朔.” 僧云: “一句流通, 人天聳耳.” 師云: “墨黲襴衫日裏曬.” 進云: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云: “重言不當吃.”

여쭈었다.
“적수(赤水)에서 보배 구슬을 구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것은 인간세상의 보배일 뿐입니다. 꽃구름을 동반하여 큰 소리로 말한다 하여도 진실로 격외의 말이 아닐 것입니다. 도대체 오늘은 무엇으로 사람에게 보이시겠습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한밤중엔 제삿밥 먹으러 온 귀신이 북 치는 소리를 듣고,
아침에는 여울 가의 노랫소리를 듣는다네.”

問: “赤水求珠, 猶是人間之寶, 和雲唱出, 猶非格外之談. 未審今日
將何示人?” 師云: “夜聞祭鬼鼓, 朝聽上灘歌.”

여쭈었다.
“형상을 초월하여 푸른 하늘 바깥을 말하고, 그윽하고 현묘한 일을
말하면 어떻습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언덕 위의 사람들이 운율을 붙여 노래하면,
고깃배 어부들이 운에 맞춰 노래하지만 잘 맞추질 못한다네.”
말씀드렸다.
“그윽하고 현묘한 일은 어떠합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낚싯바늘은 길고 낚싯줄은 짧다.”

問: “言超象表靑霄外, 出語幽玄事若何?” 師云: “岸上行人聲有韻, 船中漁父和不齊.” 云: “幽玄事若何?” 師云: “鈎長線短.”

여쭈었다.
“여태껏 전해오는 일을 그 누구도 선뜻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얼른 말씀해 주십시오.”
스님이 말씀하셨다.
“팔십 늙은이는 지팡이를 짚지 않는다.”

問: “從上來事, 未有人當頭道得. 請師當頭道.” 師云: “八十翁翁不拄杖.”

여쭈었다.
“듣자니 스님께선 깊은 못에서 미묘한 뜻을 끌어낸다던데, 곧바로 푸른 하늘의 일을 투탈(透脫)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갑기(甲己)의 해에는 병(丙)이 맨 앞에 나온다.”
말씀드렸다.
“오늘 어떠하십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눈이 멎으니 참으로 좋구나!”

問: “聞師引出潭中意, 直透靑霄事若何?” 師云: “甲巳(己)之年丙作首.” 云: “今日事若何?” 師云: “大好雪晴.”

여쭈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삼 서 근.”

問: “如何是佛?” 師云: “麻三斤.”

(중략)


2. <가송> 중에서 (pp.251~254)

26. 《십심송(十心頌)》 - 열 가지 마음의 노래

마음은 봄이라
산하와 대지에 널리 비 내려주고
떫고 시고 짜고 싱겁고 달고 쓰게 하여
모두가 봄의 공덕 덕분에 더욱 힘 돋네.

마음은 물이라
그릇의 모나고 둥긂과 넓고 좁음에 따르고
혹은 곧장 사람을 따라 더러워지기도 하니
여러 가지가 모두 다 법왕의 법이라네.

마음은 불이라
뭇삶의 번뇌의 열매를 성숙하게 해주고
가지마다 이파리마다 널리 다 무성하게 하니
핵심에서 한 송이 연꽃 피어나네.

마음은 저울이라
세상의 모든 집에서 함께 사용하여
털끝만치 가볍든 무겁든 스스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니
곧 스스로 은거하지 못함을 당연히 알리라.

마음은 자[尺]라
세상 사람에게 꼿꼿함을 보여주면
설마 눈금 아래를 미루어 헤아리진 않겠지?
지옥 삼도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리라.

마음은 말통[斗]이라
하늘 끝까지 다하도록 재어서 시비하는 입으로
높은 산만큼 쌓아서 심정에 두면
죽은 뒤에 지옥고를 스스로 받으리.

마음은 등불이라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비추어보고
곧장 행하도록 가리켜 주나, 행하지 못하면
반드시 속여서 지옥 갈 원인을 지으리라.

마음은 거울이라
인간의 삿됨과 바름을 환하게 비추니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면 흡사 곧은 듯하나
뒷면은 오히려 검기가 옻칠과 같네.

마음은 도라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사니 달빛은 밝으나
다만 시끄러운 곳에서 보리를 증득하여
문득 여래의 참되고 바른 도에 계합한다네.

마음은 스승이라
여섯 도적 잘 붙들어 잠시도 못 벗어나게 하며
때때로 불러다 눈앞에다 두면
문밖을 나서려 하여도 어쩌지 못하리.

《十心頌》
心是春, 普雨山河及大地, 澀酸鹹淡甘與苦, 盡受春功滋助力.
心是水, 任器方圓與寬窄, 或直隨人得濁惡, 諸般皆盡法王法.
心是火, 熱得衆生煩惱果, 枝枝葉葉普皆榮, 開得心蓮花一朵.
心是秤, 萬戶千門同共用, 纖毫輕重自低昂, 便合自知不高穩.
心是尺, 示與世人生條直, 莫教指下有推那? 地獄三塗難得出.
心是斗, 量盡天涯是非口, 堆山積岳在心思, 死後波吒親自受.
心是燈, 照見人間黑暗心, 指教直行不能行, 須作欺瞞地獄因.
心是鏡, 照破人間邪與正, 對面言談恰似直, 背後猶來黑似漆.
心是道, 凡聖同居月皓皓, 只於閙處證菩提, 便合如來眞正道.
心是師, 條貫六賊不暫離, 時時呼喚在目前, 纔使出門不柰伊.


3. 《동산어록에 나오지 않고 타어록에 나오는 법문》 중에서 (p.257)

ㄱ. 짚신이 몇 켤레나 닳았나

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왔나?”
말씀드렸다. “여주(汝州)에서요.”
스님이 말씀하셨다. “여기서 얼마나 떨어졌지?”
말씀드렸다. “8백 리입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짚신이 몇 켤레나 닳았어?”
말씀드렸다. “세 켤레요.”
스님이 말씀하셨다. “어디에서 돈이 나서 샀어?”
말씀드렸다. “삿갓을 만들어서요.”
스님이 말씀하셨다. “큰방에 들어가거라.”
그 스님이 “네!” 하고 대답하고는 갔다.

師問僧: “甚處來?” 云: “汝州.” 師云: “此去多少?” 云: “八百里.” 師云: “踏破幾緉草鞋?” 云: “三緉.” 師云: “甚處得錢買?” 云: “打笠子.” 師云: “參堂去.” 僧應諾去.



◆ 역자의 말

“어(語) 속에 어(語)가 있음을
사구라고 이름하고,
어(語) 속에 어(語)가 없음을
활구라고 이름한다.
語中有語, 名為死句, 語中無語, 名為活句”

동산 수초 스님은 이렇게 최초로 사구와 활구의 정의를 내리신 분이다. 스님은 ‘어중무어(語中無語)’, 곧 명안납자가 근기를 맞이하여 즉석에서 드러내는 줄탁동시의 용(用)인 어구를 활구라고 하였으나, 뒤에는 조사의 남겨진 언구인 공안을 주로 활구라고 하게 되었다. 이는 거량 문답이 활발하던 시대에는 선사들이 직접 학인들을 제접하면서 근기에 따라 맞추어 어중무어의 활구를 들이대었으나, 후세엔 문답하는 일이 드물어지면서 혼자서 수행하는 풍토가 흐르게 되고 여기에 간화선이 유행하면서 활구의 정의도 주로 조사의 공안으로만 국한되어 이르게 된다.
여기 조사선이 점차 박물관으로 들어가고 있는 현금(現今)에는 어중 무어의 흐드러진 활구 꽃밭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다. 선사들의 법맥을 살펴보면 동산(洞山)이라는 호를 가진 선사들이 꽤 많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선사는 우리가 보통 동산 스님이라고 부르는 조동종의 개조 동산 양개[洞山良价(807~869)] 스님을 떠올리는 것이 상식이다. 동산 양개 스님은, 당시에는 균주(筠州)였고 지금은 강서성(江西省)의 의풍현 동북쪽에 있는 동산(洞山)에서 보리원(菩提院)을 열고 거기서 교화를 폈다. 또 한 분의 잘 알려진 동산 스님은 동산 수초 스님으로 당시는 양주(襄州)로 불렸던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양양시(襄陽市)의 동산사(洞山寺)에서 법을 펼쳤던 운문종 제2대 선사다.
하지만 동산 수초 스님은 워낙 유명했던 동산 양개 스님에 파묻혀 고작 ‘마삼근(麻三斤)’, ‘동산삼돈(洞山三頓)’, ‘동산오대(洞山五臺)’, ‘동산전사(洞山展事)’ 등의 몇몇 공안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졌었다. 그것도 심지어 ‘동산오대(洞山五臺)’ 공안이 『선문염송』에서는 동산 양개 선사 편의 제698칙에 실려 있고, 『선종송고련주통집』 권24에서도 동산 양개 선사편에 실려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동산 수초 스님은 전사(展事)와 투기(投機)라는 용어를 창안하였고, 연밀 스님과 더불어 사구(死句)와 활구(活句) 개념을 처음으로 들고 나와서 심지로(心智路)를 즉각 끊어버리는 경절문(徑截門)의 조사관(祖師關)을 철저히 깨치게 하여 선가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분이다.

동산 스님이 운문종의 적자답게 기요(機要)로 사용하는 일구(一句)의 면모를 살펴보면 정교하면서도 간결함이 돋보이며, 활용하는 활구는 압축미가 철철 넘쳐난다. 스님은 대오를 이루고서 바로 그 자리서 “인가가 없는 곳에 암자 하나를 우뚝 세워 놓고서, 한 톨의 쌀도 모아 놓지 않고 채소 한 포기조차 심어 놓지 않고서도 온 천하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접대하여 쇄쇄낙락한 납승으로 만들어 놓겠다.”라고 하였다. 본 어록을 살펴보면 뒤에 동산선원에서 학인들을 제접하면서 그는 이 약속을 충실히 지킨 것으로 보인다. 그 어떤 직위도 지니지 않은 채 인적 드문 곳 자그마하고 소박한 암자에서 아무런 재물도 쌓아 놓지 않고 학인을 맞아들여 이끌어 나가는 진솔한 선사의 모습을 모범으로 실천한 것이다.
“이 동산의 ‘여기’를 따라 보면, 말도 맛이 없고 먹어도 맛이 없으며 법도 맛이 없어서 맛없는 구(句)가 사람들의 입을 완전히 틀어막게 될 것입니다.”
동산 스님의 말씀처럼 이 어록은 말라 비틀어져, 너무나 말라 비틀어져 아무런 맛이 없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지만, 치연(熾然)하게 공부에 매진하는 수행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2019년 하안거를 보내면서, 영곡 和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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