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도서안내 > 불교문학/문화

 

 
 

  한암

   red00_next.gif저   자 : 남지심
   red00_next.gif판   형 : 변형 신국판
   red00_next.gif출간일 : 2016-04-30
   red00_next.gif페이지 : 320쪽
   red00_next.gifI S B N : 978-89-98742-63-8(03810)
   red00_next.gif정   가 : \15,000

   red00_next.gif독자서평 쓰기


 

 

겨울산은 평지보다 해가 짧다. 그래서 해질녘에 산길을 오르는 스님들의 발길은 더욱 바빠진다. 한암 스님은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해를 보며 걸음을 옮겼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이 깊은 산속에서도 두 길을 향해 걸어가게 될 것이다. 부처를 향한 길과 조선불교를 지키는 길을. 석양을 받으며 전나무 숲 속으로 멀어지는 스님의 뒷모습이 고고하고 강건하다.(p.10)


한암 스님은 비바람만 겨우 피할 수 있게 얽어 놓은 토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정좌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12시간을 꼿꼿이 앉아 계신 동안 주위의 어둠은 스러지고 높고 낮은 산세가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새벽이 된 것이다. (……) 보궁에서의 하룻밤은 칼날 위에 선 것 같은, 털끝만큼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은 그런 시간이었다. 결가부좌를 풀고 토굴 밖으로 나온 한암 스님은 편안한 자세로 포행을 했다. 한 발, 한 발, 보궁 앞을 걷던 한암 스님은 높고 낮은 산세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보궁에서 내려왔다.(p.14)


밤새도록 사륵사륵 내린 눈이 상원사 앞뜰을 하얗게 덮고 있다. 좌복에 앉아서 용맹 정진하던 스님들은 죽비소리를 듣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몸을 풀었다(좌선 후에 일어서서 걷는 것, 몸을 푸는 것을 경행(經行), 보행(步行)이라고 한다). 두 손을 비벼서 얼굴을 문지르기도 하고, 두 팔을 깍지 껴서 좌우로 몸을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펴서 무릎을 주무르기도 하면서. 가볍게 몸을 푼 스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온 천지가 순백으로 변해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은 먼지 한 톨 내려앉지 않은 청정무구 그 자체였다. (……) 불기 2953년(1926년) 병인년 새해가 서설과 함께 찾아왔다. 해가 바뀌는 날이라 스님들은 용맹정진으로 밤을 새웠다. 그래서 참선을 끝내고 예불을 드리게 된 것이다. 스님들은 새벽예불을 드리고 곧바로 조실로 갔다. 한암 스님께 세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가사장삼을 수한 8명의 스님들이 자리를 잡고 서자 한암 스님도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세배 받을 차비를 하였다.
“조실스님, 세배 올리겠습니다. 올해도 법체 강령하십시오.”
선임수좌가 이렇게 말하며 세배를 하자 다른 스님들도 같은 말을 하며 세배를 했다.
“우리가 중으로 살고 있는 것은 부처님 지혜에 다가가기 위함일 테니, 공부가 익어가도록 노력하기 바라네.”
한암 스님은 합장으로 세배를 받으며 간곡하게 당부했다.(pp.27-28)


한암 스님은 여름에 덮으시던 흰 광목홑이불로 몸을 감싸고, 임시로 만든 가마에 실려 연화대로 내려오셨다. 관대거리 아래에 있는 개울가에 마련된 연화대는 아늑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산은 아직 찬 기운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연화대는 이상하리만치 아늑하고 포근했다.
한암 스님의 유체가 가부좌를 하신 모습 그대로 연화대에 앉자 그 위에 나뭇가지가 얼기설기 걸쳐지고 다비장이 차려졌다. 관 속이 아닌,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의 스님 몸에 불을 붙인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파 스님들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부처님이 계신 연화세계로 얼른 가십시오.”
범룡 스님이 울며 불이 붙은 솜방망이를 던지자 희찬 스님, 희섭 스님, 김현기 대위도 울며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p.306)

 

남지심

작가와 작품은 일치할까?
이 질문에 아마 그럴 것 같다고 대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한 분이 남지심 선생이다. 남지심 선생은 강릉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장편공모에 <솔바람 물결소리>가 당선되어 글쓰기 작업을 시작한 이래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화엄만다라를 그리듯 모든 등장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글을 써 오고 있다.

주요 작품집으로는
장편소설, 《솔바람 물결소리》, 《연꽃을 피운 돌》, 《우담바라》(전4권)
다큐소설, 《담무갈》(전4권), 《청화큰스님》 (전2권), 《자비의 향기 육영수》
수필집, 《욕심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톨스토이와 흰 코끼리》
콩트집, 《새벽하늘에 향 하나를 피우고》 등이 있으며
《우담바라》는 약 150만 부(총 600만 권)이 팔린 밀리언셀러로 불교를 세상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1장 오대산의 학(鶴) • 007
제2장 무너진 하늘 • 049
제3장 언 땅 밑에서도 봄은 준비되고 있다 • 073
제4장 인연, 그 아름다운 고리 • 105
제5장 새로운 시작 • 153
제6장 혹한을 견뎌야 봄을 맞이할 수 있다 • 183
제7장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 • 223
제8장 해방, 그 공간 안의 불교 • 249
제9장 부촉, 이별의 준비 • 265
제10장 숭고한 작별 • 287

저자 후기 • 312
한암 선사 연보 • 314

 

도서출판 민족사에서 한암 선사(漢岩, 1876~1951)의 사상과 가르침의 정수를 담은 논문집 《한암선사연구》(민족사 학술총서 69)에 이어 한암 선사의 생애에 소설적 요소를 가미한 평전소설 《한암》을 출간했다. 《한암》은 밀리언셀러 《우담바라》의 작가 남지심 선생의 신작으로, 선생은 수년 동안의 숙고 끝에 한암 선사의 고고한 삶을 특유의 우아한 필체로 소설화했다.


근현대 한국 불교사의 진정한 사표(師表)
역사상 유례없이 네 차례나 조계종 종정에 오른 인물
암울한 시대에 한국 불교의 등불이 된 한암 스님
그의 눈과 귀가 되어 쓰다!

한암 선사(漢岩, 1876~1951)는 화천에서 태어나 1897년 금강산 장안사에서 행름 화상을 은사로 출가 득도한 후 한국 불교를 중흥한 분이다. 선사는 일제강점기에 ‘내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 오대산으로 들어가 입적할 때까지 그곳에서 정진하며 후학들을 지도했다. 조계종 초대 종정이자 역사상 유례없이 네 차례나 종정에 올랐던 한암 스님은 한국불교의 정신적 기둥이자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올해는 한암 선사가 ‘좌탈입망(앉아서 참선한 채로 열반)’ 하신 지 65주기가 되는 해이다. 이에 따라 지난 3월에는 한암 대종사의 가르침과 수행정신을 기리는 65주기 추모다례재가 월정사에서 봉행되었다. 또한 한국불교학회는 서울 봉은사 보우당에서 ‘한국불교 전통의 계승과 한암 선문’을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암 선사의 사상과 가르침은 오늘날 한국불교의 정신적 근간으로 면면이 계승되고 있다.


“한암 대종사께서는 일제강점기 어렵고 혼탁한 시대에 치열한 수행을 통해 선과 교를 겸비하고 한국 불교의 초석을 놓았다.” ― 퇴우 정념 월정사 주지스님



한암 선사, 한국 불교의 초석을 놓다!


늦가을 찬바람이 소매 속으로 파고든다. 등에 멘 걸망에도 바람에 휘날린 낙엽이 얹혀 있다. 한암 스님은 걸음을 옮기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50년의 생애, 그 생애를 돌이켜보면 부처를 향한 길과 조선불교를 지키기 위한 길을 걷는 데 바쳐졌다고 할 수 있다. 부처를 향한 길은 오고감에 흔적이 남지 않는 자유의 길이다. 그러나 조선불교를 지키는 길은 시절인연의 길이기 때문에 말이 따라야 하고 행동이 따라야 한다. 스님은 말과 행동이 따라야 하는 그 길을 침묵 속에서 걸어왔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도 그 길을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p.9)

《한암》은 한암 선사가 50세 되던 해에 봉은사의 조실 자리를 내놓고 서울을 떠나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당시 조선불교는 숭유억불 정책을 폈던 조선왕조 5백 년을 거치고 일제 식민 지배를 받는 현실 속에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이런 조선불교를 어떻게 다시 중흥할 수 있을까? 조선불교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수행자로서의 덕목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가? 소설은 이 시기 한암 선사를 사로잡은 문제의식을 따라간다. 스님은 “부처를 향한 길과 조선불교를 지키기 위한 길”, 다시 말해 “오고감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자유의 길”과 “말과 행동이 따라야 하는 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고민했다. 한암 선사는 수행자의 길과, 조선불교를 지키는 길 어느 하나도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산중에 있으면서도 세상을 등지지 않고 살아갔던 한암 스님. 선사에게는 산문 밖의 삶과 산문 안의 삶이 다른 게 아니었다. 선사라고 하면 흔히 세상과 담을 쌓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스님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한암 스님은 이런 선사의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 수행과 실천이 둘이 아닌 삶을 살아가셨다. 소설의 첫 장면은 이런 한암 선사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었다.

한암 선사가 오대산에서 산중스님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승가 오칙(僧伽五則)이었다. 승려라면 반드시 참선 공부와 경전 공부를 해야 하고, 염불과 의식 집전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가람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스님답게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세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그것이 승려 스스로를 존엄하게 지키는 길이며, 일본인들로부터 조선불교를 지키는 길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한암 스님의 가르침 덕분에 일제시대, 한국에 불교의 수행 전통이 되살아나고 한국 불교가 중흥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근현대 불교사의 대표적 사표(師表)로 추앙받고 있는 한암 선사의 가장 큰 업적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암 스님!

소설 속에는 한암 스님의 수제자 탄허 스님이 출가하기 전 한암 스님과 서로 주고받은 서간 등 한암 스님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들도 실려 있다. 이를 통해 한암 스님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대의 재주와 덕행은 비록 옛 성현이 나오더라도 반드시 찬미하여 마지않을 것이네. 더욱 더 있어도 없는 듯하고 차 있어도 비어 있는 듯이 노력하니, 어느 누가 그 고풍(高風)을 경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평소에 음영(吟詠, 詩作)은 즐겨하지 않네. 그러나 이미 마음달이 서로 비추어서, 묵묵히 있을 수 없기에 간단하게 문장을 엮어 보내니 받아 보고 한번 웃으시게. (p.144)

위의 인용문은 한암 스님이 탄허 스님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이다. 남지심 선생은 이 부분에서 “마음달이 서로 비추었다는 대목에서는 아마도 목이 잠겨 한암 스님이 계시는 오대산을 향해 조용히 허리를 굽히고 절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썼다. 행간을 읽어내는 남지심 선생의 서정적인 문체를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훗날 오대산의 거목이 된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남지심 선생은 한암 스님의 주변인들의 눈을 통해 한암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소마 쇼에이라는 일본 스님이 상원사 선원에 머무르면서 쓴 글을 인용하여 일본인에게도 경계를 두지 않았던 한암 스님의 모습을, 지위 높은 일본인들이 상원사를 방문한 날의 에피소드를 통해서는 권력자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한암 스님의 당찬 모습을 보여준다. 한암 스님은 불의 앞에선 누구보다 용감하고, 수행자로서의 덕목을 지킬 때에는 누구보다 엄격했지만 평상시엔 신도들과 제자들에게 한없이 다정하신 분이었다.
또 남지심 선생은 대혜성 보살이라는 법명을 가진 궁녀 김씨의 목소리를 통해 나라를 잃은 조선 왕실의 비극적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대혜성 보살은 순종황제의 부인이었던 윤비를 모시던 궁녀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오대산으로 피신해 온 동네 소녀의 이야기는 보는 이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형제의 사연은 나라 잃은 민중들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껴지도록 한다. 이렇게 제각기의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은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