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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비와 공(空)-아날라요 스님의 초기불교 명상 수업

   red00_next.gif저   자 : 아날라요 지음 /이성동, 윤희조 옮김
   red00_next.gif판   형 : 신국판
   red00_next.gif출간일 : 2018-11-25
   red00_next.gif페이지 : 352쪽
   red00_next.gifI S B N : 9791189269036(03220)
   red00_next.gif정   가 : \15,000

   red00_next.gif독자서평 쓰기


 

 


1. 책소개

『자비와 공空―아날라요 스님의 초기불교 명상 수업』(이하 『자비와 공空』)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의 두 가지 주제는 자비(연민)와 공이다. 이 둘은 불교를 대표하는 핵심 개념이다. 특히 대승불교권인 한국불교는 자비 정신을 구현한 보살사상을 그 본질로 한다. 또 공은 연기(緣起), 무아(無我)와 더불어 불교를 대표하는 사상이다. 자비는 공이라는 불교적 지혜와 결합되지 않으면 잘못 이해될 수 있고, 공은 자비와 결합하지 않으면 완전해질 수 없다. 자비와 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저자 아날라요 스님은 붓다의 초기 설법 가운데 자비와 공이라는 주제와 연관된 구절들을 빨리 경전, 한역 아함경, 산스끄리뜨 경전과 티베트 경전에서 발췌해 섬세하게 비교・검토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한국에 명상과 심리학 분야 책들을 꾸준히 번역 소개해 오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이성동 선생과 불교학자로서 불교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윤희조 선생이 공동 번역하여 신뢰도를 높였다.

서구 심리학계에서는 마음의 공허와 상처를 치유하는 ‘마인드풀니스(마음챙김)’나 ‘마인드컨트롤’에 대한 관심도가 ‘자비’로 옮겨가고 있다. ‘마음챙김을 하고 난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붓다의 ‘자비’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기존의 패러다임이 ‘자존감 회복’이었다면, 이제 ‘자기 자비(self-compassion)’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기혐오와 분노, 슬픔과 우울감에 지배당한 사람들에게 없는 게 바로 자기 자비다. 그들에게 자존감 회복을 처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을 깎아내리거나 이용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실패했을 때 더 깊은 우울로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 자비로써 실패조차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다독일 수 있다. ‘분노의 사회’인 오늘날에 자비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이 책 『자비와 공(空)』 은 서구 심리학을 기반으로 자기 자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자비의 불교적 맥락을 제대로 보여 줄 것이고, 불교 수행자들이나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빨리어, 한역, 산스끄리뜨어, 티베트어 경전을 동시에 다루고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의 전통을 아우르는 아날라요 스님만의 연구 방법론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스님의 경전 번역 및 연구 방법론은 『마인드풀니스』를 쓴 조셉 골드스타인을 비롯한 서구의 대표적인 명상가들, 그리고 불교를 공부하는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또 스님의 글은 논리적・과학적으로 존재의 실상을 간파해 들어가면서도 가슴 깊은 울림을 준다. 교학과 수행을 겸비한 아날라요 스님이 직접 수행하면서 터득한 깨우침과 노하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1장에서는 연민의 성격에 대해 탐구한다. 2장에서는 표준적인 사무량심의 틀 안에서 연민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는지를 살핀다. 3장에서는 연민을 성숙시킴으로써 기대되는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다음 세 장은 공(空)을 탐구하는 데 주력한다. 특히 명상을 통해 공으로 점차 나아가는 것에 대해 다룬다. 7장에서는 명상 수행을 하면서 연민에서 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제적인 지침을 제시한다. 8장에서는 「업에서 생긴 몸 경(Karajakāya-sutta)」, 「공에 대한 작은 경(Cūḷasuññata-sutta)」, 「공에 대한 큰 경(Mahāsuññata-sutta)」에 대응하는 『중아함경』의 해당 경전의 번역문을 실었다.

2. 출판사 서평

자비(연민)는 어떻게 깨달음의 발판이 될 수 있는가?

자비는 엄밀히 말하면 ‘자(慈)’와 ‘비(悲)’로 나눠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자(慈)’의 원어는 빨리어 ‘metta’로서, 친밀하다는 느낌과 우정의 태도를 뜻한다. ‘비(悲)’의 원어는 ‘karuṇa’인데, ‘연민’을 뜻한다. 아날라요 스님은 자비를 섬세하게 구분하여 특히 ‘연민’으로 번역한 비(悲, karuṇa)의 기능에 주목한다. 그리고 붓다의 초기 설법에서 연민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고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맥락 안에서 그것을 파악하면서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의 첫발을 뗀다.

붓다는 연민으로 사성제를 가르쳤습니다. 초기설법에서 붓다가 연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주로 다르마(Dharma)의 가르침을 통해서입니다. (…) 가르침을 구하는 자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베푸는 자 모두 그 가르침을 연민의 한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붓다가 제자들에게 베푼 가르침은 종종 정감 어린 말씀, 즉 스승이 연민 어린 마음에서 제자들에게 해야만 하는 것을 하였노라는 식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붓다가 일단 연민에 가득 찬 스승으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면, 그 다음 순서로 제자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pp.32-33)

붓다를 의왕(醫王)이라고도 한다.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치료하는 최고의 의사라는 뜻이다. 이런 행동의 바탕에 연민이 있었다. 초기불교 사상에서 연민의 활동은 다른 사람들을 번뇌에서 벗어나 자유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런 활동은 붓다가 자신이 깨우친 진리인 사성제를 다른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가르쳤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붓다는 연민에 가득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그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연민은 윤리적 행위와 명상적 삶의 방식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이런 붓다의 연민을 자만심과 자기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동정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또 연민을 슬픔의 정서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연민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슬픔을 피해야 한다. 아날라요 스님은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연민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슬픔에 젖어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명상으로 연민을 함양하는 것은 마음이 슬픔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괴로움과 고통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서 정신적으로 동정을 표하는 대신, 연민의 마음으로 우두커니 서서 다른 사람들이 괴로움과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소망과 열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소망은 슬픔과 탄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또한 자유로워져야만 합니다. (pp.51~52)

연민은 다른 사람들이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런 소망은 슬픔 대신 긍정적인 마음, 때로는 희열에 가득 찬 마음을 이루게 된다. 이는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과 괴로움에 진정으로 반응하는 마음의 문을 여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 사람이 고통과 괴로움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가득 찬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날라요 스님은 연민이 빠질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이 연민[悲, karuṇā]을 사무량심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애라는 마음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행동과 언어에 스며들어서, 자비에 튼튼하게 뿌리를 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게 됩니다. (…) 연민은 자애라는 잘 확립된 토대에 기반하여 가장 잘 계발되고, 여기에 더하여 나머지 두 무량심, 즉 더불어 기뻐함(sympathetic joy, 喜心)과 평정심(equanimity, 捨心)이 연민을 보완해 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두 무량심은 어떤 면에서는 연민을 기르는 것을 마무리해 줍니다. (p.74)

붓다조차도 평정심이 때로는 적절한 태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런 예는 평정심이 무량심 중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연민에 가득 찬 활동을 하였음에도 사려 깊지 못하거나 때로는 차가운 반응에 직면할 때, 그때는 평정심으로 옮겨가야 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지배하고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시도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 대신 당사자들이 자신의 행동과 태도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평정심은 연민을 완성합니다. 왜냐하면 평정심으로 인해 연민에 가득 찬 행동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기대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연민에 가득 찬 행동은 필요한 경우 평정심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연민은 결과를 바라면서도 성공적인 결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요구하는 바대로 연민은 평정심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p.85)

연민은 자(慈: 자애)‧비(悲: 연민)‧희(喜: 더불어 기뻐함)‧사(捨: 평점심)라는 사무량심(四無量心, 네 가지 고귀한 마음)과 결합될 때 완전해진다. 연민이 기반하고 있는 자애[慈]는 특정 대상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 애착과는 구분된다. 자애의 마음은 특정 대상에 한정되지 않고 무한하게 퍼져나간다. 이런 자애는 분노에 대한 해독제이다. 또 연민은 더불어 기뻐함[喜]과 평점심[捨]으로 보완되어야 하는데, 더불어 기뻐함은 다르마를 가르치는 연민에 가득 찬 활동과 연관되어 있다. 평정심은 연민의 대상인 중생은 혐오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더불어 기뻐함의 대상인 중생은 열정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자애의 대상이 되는 중생은 무지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연민을 포함한 사무량심을 함양하는 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 생각하는 방식이 윤리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아날라요 스님은 연민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에서 물러서 있는 것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몸・말・정신적 행위에 친절함을 결합함으로써 본격적인 수행을 위한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수행 방식은 선방에 앉아서 하는 좌식 수행의 틀을 떠나서 명상 수행이 어떻게 실제 생활에서 드러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명상으로 연민을 계발한 사람은 마음의 잔인함에 완전히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일단 이것이 확립되면 불선(不善)한 행동이 일어날 여지도 거의 없다. 수면의 질이 좋아지는 등 일상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연민은 자기를 정화하고 내적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면서 다른 사람들을 더 잘 보살필 수 있도록 해 준다. 초기불교에서 안거 수행을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안거 수행은 연민의 활동으로 전환된다. 자기 자신의 유익함과 다른 사람의 유익함을 위한 깨달음, 그것을 추구하는 열망이 가지고 있는 변화의 힘을 통해 이런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민은 궁극적 해탈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자비와 공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아날라요 스님은 까시나 수행이나 호흡 수행도 수행자를 집중으로 이끌어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반면 연민(자비) 수행은 집중은 물론 수행자의 태도와 정신적 상태까지 변화시킨다.

『디가 니까야』와 이에 대응하는 『장아함경』에서는 사선정을 수행자의 ‘행복’으로, 그리고 사무량심을 수행자의 ‘부(富)’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 두 경전의 미묘한 차이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즉 연민을 포함한 사무량심을 함양하는 것은 행복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또한 부에 비견할 만한 정신적 상태에 도달하는 결과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에 내재된 핵심은 사무량심을 함양하는 것은 다른 정신적 평정보다 뚜렷한 이점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까시나(kasiṇa)와 같은 대상 또는 호흡을 대상으로 명상하는 것은 물론 집중으로 이끄는 뛰어난 잠재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중을 획득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이 까시나이든 호흡이든 명상의 대상으로 선택된 특별한 대상은 그 자체로는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지지해 주는 어떤 실질적인 유익함도 주지 못합니다. 반면 연민을 포함한 사무량심은 다릅니다. 깊은 집중으로 이끄는 능력에 더하여, 하나의 무량심이 명상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태도와 정신적 상태에 변화를 야기하게 됩니다. (pp.121~122)

사무량심, 그중에서도 특히 연민은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를 갖지 않을 수 있고, 이전에 매력적으로 보이던 갈망과 감각적 욕망, 그리고 혐오로 반응하던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집중이 아직 선정의 단계에까지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을 때 마음의 일시적 해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아날라요 스님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연민 수행에서 공 수행으로 나아가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스님이 서술하는 수행 방식은 사무량심의 함양이라는 맥락 안에 연민을 설정하고, 이후 계속해서 공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날라요 스님은 상좌부 불교에서 수행론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 無碍解道)』에서 볼 수 있는 네 가지 무량심과 관련된 수행법에 대해 서술하면서 그리고 무량심의 명상 수행에 대한 주요한 단계들을 자세히 살핀다. 이를 통해 자신이 바라는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사무량심의 확산 수행과 깨달음의 요소를 함양하는 수행이 결합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아날라요 스님은 명상 수행에서 사무량심을 어떻게 활용하여야 깨달음의 요소를 함양하게 되고 깨달음에 진전이 있는 결과에 이르는 지 그 핵심을 간단히 요약해 준다.
깨달음의 진전에 필요한 정신적인 자질을 가리키는 칠각지[七覺支]에는 마음챙김 · 법에 대한 탐구 · 에너지 또는 정진 · 기쁨 · 평온함 · 집중 또는 선정 · 평정심이 있다. 마음이 느슨해질 때와 조급해질 때를 고려하여 칠각지를 적절하게 가져와야 한다. 일단 깨달음의 요소들을 함양하고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게 되면 실제 수행은 끊음 · 사라짐 · 소멸 · 놓아버림이라는 네 가지 통찰과 관련된 주제들이 결합하여야만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수행의 과정에서 연민을 포함한 사무량심을 함양하는 것은 자신의 수행을 증진시키고 깨달음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높인다. 아날라요 스님은 그 외에도 사무량심 수행이 주는 많은 장점들을 언급한다.
아날라요 스님은 공을 성공적으로 함양하면 감각적인 것에 대한 모든 흥미 그리고 동일화와 자만의 모든 형태들을 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은 없고, 자아에 속한 것도 없다는 것에 대한 명상으로 귀착된다. 아날라요 스님은 이와 관련된 『중아함경』의 해당 경전 구절들을 8장에 직접 번역하여 실어 놓았다.
아날라요 스님은 이 책에서 공을 향해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과정, 즉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의 전체 궤적을 단계별로 자세히 그려 보여 수행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의 독자들이 각자의 요구와 성향에 따라서 아날라요 스님이 제시한 수행 방법을 자유롭게 이용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각자의 삶이 자비(연민)의 발판 위에서 모든 욕망과 번뇌를 소멸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에 동참하게 되길 희망해 본다.


3. 추천사

“이 책은 경전을 엄밀하게 고증한 결과물로서 학계뿐만 아니라 불교 수행자들에게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불교의 사상과 수행에 대해 알고자 하고,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책은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
―17대 까르마빠 오겐 틴레 도르제

“아날라요 스님은 연민과 공이라는 근원적인 주제에 대해서 빨리 경전, 아함경, 그리고 산스끄리뜨 경전과 티베트 경전을 섬세한 텍스트 분석으로 연결하고 있다.”
―텐진 빠모(샤카디타 인터내셔널 회장,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Cave in the snow)』의 저자)

“불교수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공과 자비의 가르침이 초기불교에 풍부하게 있다는 것을 그 어떤 책보다도 잘 보여 주고 있다.”
―툽텐 최된(『초심자를 위한 불교(Buddhism for Beginners)』의 저자)

“아날라요 스님은 초기불교의 가르침에서 연민과 공의 마음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 주면서 우리를 그 길로 초대한다.”
―잭 콘필드(『지혜로운 마음(The Wise Heart)』의 저자)

“수행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아날라요 스님이 이루어 놓은 업적은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샤론 샐즈버그 (『하루 20분 나를 멈추는 시간(Real Happiness)』의 저자)

“이 책은 스님의 이전 저서 사띠빠타나(satipaṭṭhāna)처럼 빨리 경전을 아함경, 산스끄리뜨 경전, 티베트 경전과 비교하면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 가고 있다. 그 결과 초기불교가 의미한 수행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광범한 탐구로 나아간다.”
―리타 M. 그로스(『페미니즘과 종교(Feminism and Religion)』의 저자)


4. 17대 까르마빠 성하의 서문

아날라요 스님의 저서에 서문을 쓸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쁩니다. 아날라요 스님은 사람들이 초기불교 명상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원에 걸쳐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책은 경전을 엄밀하게 고증한 결과물로서 학계뿐만 아니라 불교 수행자들에게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불교의 사상과 수행에 대해 알고자 하고,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책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가교 역할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경전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그것을 실제 삶의 현장에 적용하는 수행을 통해서 그 내용이 더욱 풍부해집니다. 아날라요 스님은 불교 수행에 정진하는 승려이자 역사적·비평적 연구 방법을 탐구하는 교수로서 이 두 영역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스님의 이런 관점은 경전에 대한 개별적 이해를 심화시킵니다. 다음으로, 나는 하나의 불교 전통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다른 불교 전통에서 보존된 경전을 잘 숙고하라는 권고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언어의 장벽을 받아들여 다른 언어로 현존하는 경전을 간과하곤 합니다. 이 책은 빨리어, 산스끄리뜨어, 한문, 티베트어로 쓰인 경전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연민을 함양하고, 공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폭넓게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경전의 서로 다른 맥락에서 오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숙고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연민과 공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하나의 작업틀 안에서 묶어 내고, 그 둘의 상호보완적 가치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에서 말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명상 체험과 철학적 이해라는 두 날개가 잘 조화를 이루어 진정으로 비상할 수 있도록 아날라요 스님은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17대 까르마빠 오겐 틴레 도르제(Ogyen Trinley Dorje)
인도 보드가야
2014년 11월 18일


5. 미리보기

다른 사람이 괴로움을 받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과, 그 사람이 괴로움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적인 괴로움에 마음을 두는 것은 괴로움[dukkha]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찰은 연민을 명상하면서 함양하는 기반이 됩니다. 그러나 연민 그 자체를 기르는 것은 다른 사람이 괴로움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이렇게 하여 마음은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하나의 목적으로 삼게 됩니다. 이런 목적은 결과적으로 슬픔을 낳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마음, 때로는 희열에 가득 찬 마음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명상을 통해서 연민을 기르는 것은 긍정적인 마음이나 희열에 가득 찬 마음에서 이루어질 때에만 보다 깊은 집중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인 관점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연민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슬픔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연민을 일으키는 것은 자연스럽게 슬픔에 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고통에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상적인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과 괴로움에 진정으로 반응하는 마음의 문을 여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 사람이 고통과 괴로움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가득 찬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연민은 다른 사람이 괴로움을 겪는 만큼 동정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면 후기 불교 전통에서 연민의 “가까운 적”으로 간주된 것의 포로가 되어 버립니다.
『청정도론(Visuddhimagga)』에 의하면 잔인함은 연민과는 아주 반대된다는 의미에서 연민의 “먼 적”입니다. 반면 세간적인 슬픔은 연민의 “가까운 적”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두 종류의 적은 모두 피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p.22)


연민의 활동은 사성제가 제공한 이상적인 전망에 바탕을 두어야만 합니다. 결과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인 연민은 다른 사람의 실제적인 아픔과 고통을 보고(첫 번째 진리), 그뿐만 아니라 그런 괴로움을 낳는 상황(두 번째 진리),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네 번째 진리)을 보게 됩니다. 연민을 움직이는 힘은 아픔과 고통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되는 것(세 번째 진리)을 바라는 소망입니다. 말하자면 사성제의 지혜와 결합하게 됨으로써 연민은 철저하게 불교적이게 되는 것입니다.(pp.31~32)

붓다는 연민으로 사성제를 가르쳤습니다. 초기설법에서 붓다가 연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주로 다르마(Dharma)의 가르침을 통해서입니다. 연민과 가르침의 연관성은 아주 밀접하고 잘 확립되어 있어서, 가르침을 요청하는 것은 항상 “연민에 가득 찬 마음에서”라는 구절이 기준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사용된 용어가 아누깜빠(anukampā)인데 초기경전에서는 종종 연민이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반면 까루나(karuṇā)는 연민의 명상 수행과 연관된 맥락에서 주로 선택되는 용어입니다. 실제적인 관점에서는 두 용어 모두 연민에 대한 초기불교 개념의 상보적인 측면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구하는 자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베푸는 자 모두 그 가르침을 연민의 한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붓다가 제자들에게 베푼 가르침은 종종 정감 어린 말씀, 즉 스승이 연민 어린 마음에서 제자들에게 해야만 하는 것을 하였노라는 식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붓다가 일단 연민에 가득 찬 스승으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면, 그 다음 순서로 제자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pp.32-33)

자애의 함양이 얼굴에 미치는 신체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이 경전에서는 자애의 함양이 마음의 아름다움을 계발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름다움이 어떤 신체적 형태를 통해서 눈부시게 빛날 수 있다고 하여도, 이런 신체의 아름다움은 현대의 표준적인 기준을 만족시키는 데는 부족합니다. 자애라는 마음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행동과 언어에 스며들어서, 자비에 튼튼하게 뿌리를 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게 됩니다. 위의 경전 구절들은 자애를 함양하는 것이 연민을 함양하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애의 정신적 태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식사 후의 설거지와 같은 일상적 활동부터, 잔인한 노상강도의 손아귀에 놓인 무력하고 최악의 위협적인 상황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황에 적용됩니다. 자애를 이렇게 지속적으로 함양하게 되면 자애는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나아가는 길, 연민의 아름다움에서 선두 주자가 됩니다.
연민은 자애라는 잘 확립된 토대에 기반하여 가장 잘 계발되고, 여기에 더하여 나머지 두 무량심, 즉 더불어 기뻐함(sympathetic joy, 喜心)과 평정심(equanimity, 捨心)이 연민을 보완해 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두 무량심은 어떤 면에서는 연민을 기르는 것을 마무리해 줍니다. (p.74)

조건의 껍질 위에 껍질은 겉으로는 잘 이루어진 결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차례로 벗겨 냈을 때 그 속에는 단단한 그 무엇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의도와 결정의 과정 뒤에 진정한 사람이나 자아는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과거에서부터 축적되어 온 조건의 껍질 위에 껍질이 있을 뿐입니다.
정신적 경험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인 의식은 어쨌든 자아 개념의 미세한 기반으로 쉽게 간주될 수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마술의 환영과 같은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마술의 환영으로 형성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아무런 실제적인 기반이 없는 것입니다. 지각이 신기루에 비견되고 그리하여 최소한 멀리 있는 사물 이미지의 이동에 기반을 두는 실제적인 빛의 현상인 반면, 의식은 철저히 망상적인 것이라서 마치 환각과 같은 것으로 어떤 실제적인 것도 총체적으로 비어 있습니다. 나는 의식의 공한 성질에 대해서 5장에서 더 자세하게 논할 것입니다.
종합해서 말하면 ‘나’와 ‘나의 것’으로 대개 생각하는 핵심적인 측면으로서 다섯 무더기[五蘊]는 철저하게 공한 것입니다. 몇 개의 포말, 몇 개의 물거품, 신기루, 파초의 껍질, 마술, 바로 이것들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강력한 이미지들은 공한 것을 명상하는 보조물로서 아주 도움이 됩니다. 그것에 집착하고 동일화하는 자신의 경험을 다섯 무더기로 인식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서 이런 비유에서 사용된 이미지의 도움으로 철저하게 공한 것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p.147​)

살아 있는 존재들은 변화하고 조건화된 현상으로 존재합니다. 그것은 마치 벽이나 다른 현상적인 물질들이 변화하고 조건화된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둘 다 변화하는 과정의 조건화된 힘 때문에 정확히 존재합니다. (p.174)

의식이 무상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또 다르게 비유한 것이 숲속 원숭이의 비유입니다. 원숭이가 숲속에서 돌아다닐 때 한 나뭇가지, 그리고 다음 다른 나뭇가지를 붙잡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한 대상을 취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대상을 취합니다. 의식은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의식되는 순간에 일어난 조건화된 흐름에 불과합니다. “의식(consciousness)”이라고 말하는 대신 명사의 사용에서 기인할 수 있는 안정성과 실체성의 뉘앙스를 피하기 위해서 “의식하기(consciousness-ing)”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p.182)

상좌부 불교에서 수행론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 無碍解道)』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빠띠삼비다막가』에서 자애를 서술하면서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을 향해 네 가지 측면의 소망을 공식화합니다. 『빠띠삼비다막가』에서는 이 모든 것을 자애와 연관시키지만, 나는 실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네 가지 무량심 모두를 일으키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을 위한 네 가지 소망은 다음과 같습니다.

•증오에서 벗어나는 것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
•편안해지는 것
•그들 자신의 행복을 보살피는 것 (p.266)

 

지은이

아날라요 스님(Prof. Dr. Bhikkhu Anālayo)
1962년 독일에서 태어났고, 1995년 스리랑카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2000년 스리랑카의 페라데니야 대학에서 『염처경(Satipaṭṭhānasutta)』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논문은 2003년 영국의 윈드 호스 출판사(Windhorse Publications)에서 『염처경: 열반에 이르는 길(Satipaṭṭhāna: the Direct Path to Realization)』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2007년에는 마르부르그 대학에서 교수자격시험(habilitation)을 통과하였다. 현재 함부르크 대학의 누마타 불교연구센터(Numata Center for Buddhist Studies)의 교수이자, 대만의 다르마 드럼 인문과학 연구소(Dharma Drum Institute of Liberal Arts)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된 연구 분야는 초기불교이며, 특히 한문 아함경, 명상, 불교의 여성이라는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학문 연구와 함께 시간의 반을 안거수행으로 보내고 있으며, 아시아와 서구에서 정기적으로 명상을 지도하고 있다. 현재까지 19권의 저서를 출판하였고, 다양한 서적에서 36편의 챕터를 썼으며, 116편의 논문과 8편의 번역논문을 저널에 싣고 있다. 스님의 구체적인 논저는 다음의 웹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buddhismuskunde.uni-hamburg.de/en/personen/analayo.html



옮긴이

이성동
정신과 전문의로서, 현재 서울 명일동 소재 M의원 원장으로 있다. 옮긴 책으로는 『선과 뇌의 향연』, 『선과 뇌』, 『트라우마 사용설명서』, 『붓다와 아인슈타인』, 『불교와 과학, 진리를 논하다』, 『달라이라마-마음이 뇌에게 묻다』, 『스타벅스로 간 은둔형 외톨이』, 『정신분열병의 인지-행동 치료』, 『정신분열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신분석가-카렌호나이의 생애』, 『육체의 문화사』, 『호흡이 주는 선물』, 『공감하는 뇌-거울뉴런과 철학』, 『마인드풀니스』(공역), 『각성, 꿈 그리고 존재』(공역) 등이 있다.

윤희조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불교와심리연구원 원장, 한국불교상담학회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저와 번역서로 『불교의 언어관』, 『불교심리학사전』, 『불교상담학개론』, 『심리치료와 행복 추구』, 『붓다와 프로이트』, 「연속과 불연속의 관점에서 본 아비담마의 마음과 프로이드의 무의식」, 「성냄을 원인으로 하는 마음에서 보는 아비담마의 정서심리학」 등 다수가 있다.

 


17대 까르마빠 성하의 서문 … 004
옮긴이의 글 … 006
약어표 … 009

서론 … 014

I _ 연민의 함양
1. 연민의 특징 … 020
2. 연민과 윤리성 … 024
3. 연민과 사성제 … 027
4. 연민과 가르침 … 032
5. 연민과 안거 … 037
6. 명상에서 연민 … 044
7. 명상에서 보는 연민의 대상 … 050
8. 요약 … 054

Ⅱ _ 연민의 맥락
1. 자애 … 058
2. 일상 행동에서 자애 … 063
3. 공격성에 직면하여 … 068
4. 마음의 아름다움 … 070
5. 연민과 더불어 기뻐함 … 075
6. 연민과 평정심 … 079
7. 연민과 다른 무량심들 … 088
8. 요약 … 091

Ⅲ _ 연민의 성숙
1. 자애의 이익 … 094
2. 확산하는 연민과 선정 … 101
3. 마음의 해탈로서 연민 … 107
4. 연민과 업 … 110
5. 연민과 통찰 … 115
6. 연민과 깨달음의 요소들 … 124
7. 연민과 무한한 공간 … 127
8. 요약 … 132

Ⅳ _ 공한 물질
1. 공하다는 것의 성질 … 136
2. 공을 향한 점진적인 진입 … 148
3. 땅 … 155
4. 무한한 공간 … 162
5. 무한한 공과 연민 … 171
6. 요약 … 174

Ⅴ _ 공한 마음
1. 무한한 의식[識無邊處] … 176
2. 의식의 특징 … 179
3. 의존적 발생 … 183
4. 바히야에게 주는 가르침 … 191
5. 일상생활의 공 … 199
6. 요약 … 212

Ⅵ _ 공한 자아
1. 무소유처(無所有處) … 216
2. 흔들림 없음 … 219
3. 무아(無我) … 226
4. 지각도 아니고 지각이 아닌 것도 아닌 것[非想非非想處] … 232
5. 무상(無相) … 236
6. 공의 실현 … 248
7. 공의 역동성 … 251
8. 요약 … 257

Ⅶ _ 실제적 가르침
1. 기반을 놓다 … 260
2. 연민과 다른 무량심들 … 264
3. 확산 수행 … 272
4. 공의 명상 … 278

Ⅷ _ 경전 번역
1. 「의도에 대한 경전」 … 290
2. 「공에 대한 짧은 경」에 대응하는 『중아함경』의 해당 경전 … 296
3. 「공에 대한 긴 경」에 대응하는 『중아함경』의 해당 경전 … 302

참고문헌 … 318
찾아보기 …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