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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red00_next.gif저   자 : 일초 스님
   red00_next.gif판   형 : 변형신국판
   red00_next.gif출간일 : 2017-03-25
   red00_next.gif페이지 : 292쪽
   red00_next.gifI S B N : 978-89-98742-82-9(03800)
   red00_next.gif정   가 : \14,500

   red00_next.gif독자서평 쓰기


 

 

수채화 같은 비구니스님들의 편지를 읽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힐링이 된다.

▪21쪽~22쪽
“스님, 청안 청락하시지요.
불혹不惑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저는 내 영혼과 육체가 파도에 부딪쳐 녹아내리는 거품처럼 꺼져가는 어떤 의미를 잃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존재의 의미, 소유의 의미, 그것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이방인이 되어 버린 것은,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어느 날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길을 떠나고 싶어서 소녀 때나 생각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역으로 향했어요.
‘어떤 기차를 탈까’ 어린 시절에는 기차요금을 먼저 생각하고 기차를 탔다면, 이제는 삶을 생각하면서 기차를 타고 싶더군요.”

“차는 서서히 이십대 인생의 서원처럼 미끄러지기 시작했고, 창밖에는 들녘 새색시의 곱게 빗어 올린 머리처럼 갓 피어난 억새들의 수줍음이 바람에 하늘거리더군요. 그 억새 앞에 보라색 청초한 들국화라도 몇 송이 앉아 있으면 얼마나 잘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창 밖으로 펼쳐진 들녘 너머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정말 감동이었어요.
‘초가을 하늘은 청정 그것이련가!’ ‘내 마음도 저리 맑을 수는 없을까’ ‘진정한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은 왜 만족할 수 없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 속에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 때문에 괴롭다.”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이 떠오르더군요. 부처님도 만족할 줄 모르는 중생 때문에 고뇌하셨을 거예요. 1987년 어느 겨울날에 일초 합장

▪28쪽
“스님, 잘 지내시는지요? 건강은 어떠세요.
나는 며칠 동안 심하게 감기몸살을 앓았습니다. 몸은 아프지만 한편으론 푹 내 안에 잠겨 상념에 젖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자기로 돌아와 성성하게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보면, 번뇌 속에 헤매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면서 서글퍼집니다. ‘공부를 하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탄식도 하게 됩니다.
진리는 처처에서 나타나고, 무상은 보이는 것이 다 그것인데도 말입니다. 석불의 차가움보다는 중생의 뜨거운 번뇌에 더 가까운 자신 속에서 자신을 챙기는 일념一念이 더 그리운 날이 있습니다. 무상의 흔적을 엿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일 초


▪33쪽
“있으면 번거롭고 없으면 섭섭한 것이 중의 마음인가? 중이란 참으로 고약한 인생을 배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50대의 1년은 20대의 5년과 같은 것입니다.
어느 날 훌쩍 누구 하나 곁에서 사라지면 그 빈자리 메우기 위하여 가슴 아파야 하는 뜨거움 안고 살아야 하는 나이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별’에 대해 써놓은 게 생각나네요.
스님, 스님도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닐까 싶어서 보냅니다.
모쪼록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
1991년 1월 30일 꿈에 들지 못하는 한밤중에
일초 합장

▪39쪽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텅 빈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풀꽃이 모여 여름을 만들면 매미들이 오페라 만들 연습을 하고, 나무들은 화려한 무희가 되어 춤을 추며 여름을 즐깁니다. 인간은 청중이 되어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살아 있음을 만끽합니다.
보란 듯이 높고 곧게 땅을 디디고 서서 시원스레 바스락대는 대나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푸른 공기가 참 달디 다네요.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감사하고 충만한 행복을 줍니다. 마음의 눈으로 볼 줄 모른다면 이러한 행복을 느낄 수 없겠지요.
아쉬운 점은 바로 그겁니다.
2006년 어느 비오는 날에 불사를 마치고…
일초 합장

▪41쪽
“스님,
밤이 꽤 깊은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을 놓친 것 같아요. 이 생명이 있는 한 벗어날 수 없는 늙음이라는 고苦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정말 아름다운 계절, 봄입니다. 왜 이렇게 봄은 해가 갈수록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가슴 시리게 아끼고 싶은 푸른 잎새 하나에도 마음을 담곤 합니다.
멀리 바라다보면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은 붉은 영산홍·철쭉의 꽃잔치가 자못 흥겹고, 파릇파릇 자라나는 나뭇잎들의 아름다움도 그 무엇에 견줄 수 없을 만큼 황홀합니다.
산하대지가 모두 모여 축제를 합니다. 그 중에 오직 사람만이 축제에 내 놓을 것 없이 남의 축제에 기웃거리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몇 자 적어보았어요.
2006년 봄날 일초 합장

▪43쪽
“바라만 봐도 그저 좋은 사람들에게
꿈이 꿈인 줄 알면 꿈이 꿈이 아니다
스님, 새벽예불 끝에 조용히 앉아 있노라면 아무런 번뇌 없이 적막하고 고요한 마음속에 비추이는 자신을 봅니다. 요즈음은 제가 동학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인과 더불어 살려면 자주 시비를 하여 가르쳐야 하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대중공사를 하지 않았으니 강사의 자격이 없지요.
제 마음속에 학인들의 잘못이 보이지 않아 경책할 마음이 나지 않으니 강사가 아니고, 그들을 향하여 할 말이 없어져 버렸으니 강사가 아니지요.
지금은 담담한 마음으로 혼자 있고 싶습니다. 그것은 귀찮아서도 아니고 더불어 있기 싫어서도 아닌데, 그냥 있고 싶었는데 또 인연의 고리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2008년 봄 일초
▪57쪽

선승禪僧

햇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은
차갑게 쏟아지는 달빛에 바래고
한 점 티 없는 그 마음은
그대로 보살이어라.
억겁을 흐르는 고요는
수많은 세월 동안 고독의 성城을 쌓고
아주 잊어도 좋은 듯이
앉아 있는 그대는
하나의 소녀이어라.
화산火山처럼 터지는 번뇌를 잠재우기 위하여
영원한 진리 앞에
단정히 앉은 그 모습은
하나의 청정한 샘물이어라.

1977년 여름 일초 합장


▪59쪽
스님,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건강하신지 생각이 나서 올립니다.
이런 것이 인연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밤이면 겨울로 걸어가는 낙엽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죽음보다도 더 슬픈 그리고 자존심 상하는 것이 늙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 빛을 잃고 모두 하나 되어 춤추던 나뭇잎들이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와 빨갛고 노랗고 제각기의 모습을 자랑하지만 그것도 다 가을을 알리는 낙엽임을 어찌하겠습니까.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것은 몸이 늙으면 마음도 따라 늙으면 좋으련만 따라 늙지 않음은 마음에 선근을 갖지 못한 중생에게 내리는 형벌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은 다 자기의 소리를 한다더니 방문 열어두고 달을 찾으니(모두 자신이 생긴 대로) 아직은 초승인데 둥근달을 기다려 주지 아니하고, 나무들은 손을 놓아 버립니다.

2007년 가을이 깊어가는 날
금화사에서 일초 합장


▪64쪽

단풍이 들고 낙엽이 뚝뚝 떨어져 이 나무 저 나무로 날아들며 꽃으로 피어나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입니다. 이 나라 산천의 가을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아니한 곳이 없겠지만 동학의 가을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에 비유한다면 봄 가을이 온통 아름다운 곳은 동학이 으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님을 부추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벗을 생각하며 몇 자 쓴 것을 전하니 가슴에 담아 두었다가 조만간 동학의 가을을 함께 즐겼으면 합니다. 사실은 스님이 풀어낼 세상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2013년 9월 24일


▪78쪽

스님,
겨울은 여러 모로 공부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자연이 그대로 공부를 시켜 주는 것 같아요. 잎이 뚝뚝 떨어진 빈 가지들을 이고 있는 겨울 나목을 보면서 무소유無所有를 배웁니다. 코끝이 시릴 정도의 맹렬한 추위 속에서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한다, 춥고 배고픈 가운데 도 닦을 마음을 낸다”는 옛말을 되새기며 수행자의 분상을 다잡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가슴 한 켠이 에일 듯 아리네요. 인간의 진정한 아픔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어느덧 가버린 젊음을 한탄하게 되고, 그 무한한 아쉬움이 파고들 때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입니다. 그동안 해태하였던 마음들, 그 게으름의 잔상들이 내 삶을 좀먹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아무리 후회한들 세월을 돌이킬 수가 없어서 더욱 슬펐어요. 슬픔으로밖에 남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뼈저리게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지요.
“번뇌가 곧 깨달음”이라는 말처럼 아픔을 느껴야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마음이 들자 저절로 몇 구절이 떠올라 적어봅니다. 우리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짧게 남았지만, 빈손, 빈 마음의 해탈락을 얻을 수 있도록 열심히 정진해요.
시린 겨울날에
일초 합장



▪200쪽

스님,
출가를 하면, 승僧으로 살면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어리석은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한동안은 내가 언제 그러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아무 생각 없이 참으로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행복하고 편안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출가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정한 출가는 어떤 것인가’ 하는 생각이 이제야 솟구치고 있으니 가끔은 저는 세상을 거꾸로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문제는 이전에 모두 끝내고 왔어야 하는데, 그 무거운 무게의 짐을 이곳까지 떠메고 왔으니 왜 그렇게 사람이 어리석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릇은 작은데 너무 많은 걸 담으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0년 11월 18일
대해 드립니다.


▪210쪽

저물도록 아름다운 것은 황혼이라 하였습니다. 사위어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어느 사이 인생의 새로운 축을 설계하고 계실 스님을 생각합니다.
15년 전에 스님을 처음 뵈었을 때 스님께선 지혜의 칼날로 제자들을 이끌고 계셨습니다. 저희들도 그 칼날 아래에서 다듬어지며 대교를 마칠 즈음 철없던 사미니의 껍질을 벗게 되었습니다.
동학의 푸르른 숲을 빠져나와 각자의 수행 길에 서게 되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먹물 옷을 다듬을 수 있었던 힘은 스님께서 연마해 주신 4년 반이라는 시간 덕분이었습니다.
선생님! 제자는 스승을 만나 성장하고, 스승은 제자를 만남으로써 결실을 맺는다고 합니다. 육조 대사가 신회를 만났고, 공자가 안회를 만났습니다.
2002년 8월 24일
제자 중원 합장 배례

 

일초(一超) 스님

1963년 광주 신광사로 출가, 경인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고암 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1964년)를, 자운 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1968년)하였다. 1965년 7월 5일 동학사 전문강원에 입학하였으며, 1971년 동학사 전문강원을 수료(대교)하였다. 같은 해 동학사 전문강원 중강으로 취임, 1977년 4월 10일 호경(湖鏡) 강백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다.
내원사에서 수선 안거(1977년)하였으며, 1980년 동학사 승가대학 학장으로 취임하였다. 1986년 동학사 주지를 역임, 동학사 승가대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BBS라디오 경전공부 강의(1988년~2001년: 초발심자경문, 선가귀감, 능엄경, 금강경오가해, 열반경 등)를 통해 경전에 대한 안목을 열어주고 불교의 참된 가르침을 일깨워주었다.
2002년 대한불교 조계종 단일계단 도감 겸 교수사, 2006년 14대 종회의원, 조계종 고시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 2011년 교수사, 尼 존중아사리, 2015년 尼 갈마아사리를 역임하였다. 2017년 현재 尼 갈마아사리, 동학사 승가대학원장 및 화엄학림 학장으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전법에 힘쓰고 있다. 역저서로 『대총상법문』, 『화엄경게송집』,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 『우리가 살아숨쉰다는 것은』이 있다.

 

1장 바라만 봐도 그저 좋은 사람들에게...―일초 스님이 보낸 편지
2장 때론 풀꽃처럼 때론 허공처럼―서림 스님이 일초 스님에게 보낸 편지
3장 그리운 스승 가슴에 품고...―동학사 비구니 스님들이 일초 스님께 보낸 편지
4장 흔들릴 때마다 힘이 되어 주시는 스님―세상 사람들이 일초 스님께 보낸 편지

 

총 4장으로 편집,
1장에는 우리나라 비구니 강백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일초 스님의 삶과 고뇌를 진솔하게 담은 편지와 일초 스님의 시가 들어 있고, 2장에는 도반인 서림 스님의 구체적인 일상생활, 삶의 민낯을 생생하게 드러낸 편지, 3장에는 일초 스님께 지도 받은 수많은 제자들의 각양각색의 사연을 품고 있는 편지, 4장에는 일초 스님께 위로받고 싶은 세상 사람들의 고달픈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편지가 담겨 있다.

질병, 늙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괴로움 등 삶에 대해 고민하며 서로 마음을 나누는 비구니스님들의 편지를 읽다보면 스님들도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근본 고통 속에 흔들리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아울러 신비하게, 멀게만 느껴졌던 스님들과 한결 가까워진 자신을 느끼게 된다. 스님들도 우리처럼 세상사에 대한 걱정을 하고, 감기, 관절염 따위의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 하고,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괴로움에 번민하는 등 삶의 굽이굽이마다 고민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엿보면서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된다.
비구니스님들의 솔직한 속내와 일상적인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담긴 편지의 한 구절 한 구절이 그대로 우리 삶의 거울이 된다. 한편 불교 교단을 향한 날선 비판과 애정이 담긴 편지의 내용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하늘빛이 맑아지면 물빛도 맑아지고
사람의 눈빛도 따라 맑아진다.
그 높고 넓은 하늘이 비어 있는 것만큼
행복으로 채울 수 있다.”
― 일초 스님의 편지 중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고, 사유하고, 진리의 길을 걷고 있는 비구니스님들이 그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편지. 이 책 『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수채화 같은 비구니스님들의 편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고 힐링이 된다.

“내 도반들이, 선배와 후배들이 곱게 적어 선생님께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면서 밤을 꼬박 새었습니다.

누군가는 졸업하고 떠나는 날 밤에,
외국에서 수행하며 어려움과 그 행복을,
고된 삶의 어느 한 자락에서 선생님의 제자로
승가에 오롯이 남겠다는 의지를,
형이라 부르며 살갑게 다가오는 서림 스님의
아름다운 글들이 주는 행복감,
누나를 그리워했던 속가 동생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아련함,
어린 소녀 선화행의 똑 소리 나는 질문들.

일일이 이들에게 답장하며, 수행의 길에서 멈추지 말라는 가르침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시는 것이 눈에 선합니다.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스윽 드러내다가 편지가 끝나갈 때쯤이면 선생님이라면 이렇게 답을 주시지 않을까 하며 가르쳐 주신 대로 열심히 살겠노라 하는 편지를 마주하니, 동학을 떠날 무렵 방황하며 고뇌하던 내 청춘의 아픔도 함께 느껴졌습니다.”
― <선생님의 서간집을 펴내면서> 중에서

일초 스님의 제자로서 이 책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인 원욱 스님의 말처럼 이 책에는 아주 소중한 가치들과 아름다운 추억들이 알알이 영글어 있다. 비구니스님들의 삶의 이야기는 매우 특별하면서도 매우 보편적이다. 그래서 공감이 되고, 각박하고 지친 삶에 한 줄기 휴식이 되고, 마음 깊은 위로가 된다.

‘비구니스님들은 서로 어떤 내용의 편지를 주고받을까?’

『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이 책의 제목은 일초 스님의 시, <내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에서 비롯되었다. 74세에 쓴 이 시에서 스님은 세상 모든 것이 사랑임을, 사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역설한다.

“남을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가 넘칠 때 남을 칭찬하고 기뻐하는 소리를 더 많이 해서 기쁨이 가득한 세상을 발원해야 합니다. 잘못한 사람에게 질시보다는 연민의 정을 가질 수 있는 보살의 마음이 그리운 때입니다. 나에게 힘이 있다면 더러운 오물이라도 묻어주고 덮어주는 흙의 힘으로 다시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또 다른 것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수행자가 앞장서서 기도하고 발원하고 보살행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여러분의 자비심과 자비행이 불자들의 가슴에 꽃을 피우고, 불자들이 세상에 계속 퍼뜨려 자비행의 릴레이를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 본문 p.50 중에서

일초 스님은 제자스님들로부터 연하장을 받은 새해 새아침에 위와 같은 내용의 편지로 답장해 주었다. 잘못한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가질 수 있는 보살의 마음을 일깨워주고 수행자가 앞장서서 자비행의 릴레이를 하라고 답장해 주는 모습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된다.

“몸이 진짜 아팠을 때 오기와 심술이 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으면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나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자광 스님 말씀이, ‘병보다는 늙는다는 게 치욕적이야’라고 하시던 말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진실로 지금도 마음에 맴돌아요.”
―본문 p.98 중에서

일초 스님에게 보낸 서림 스님의 마치 속살을 엿본 듯 너무나도 진솔한 편지 내용을 읽으면서 가슴이 찡해진다. 스님들도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아플 때 위로받으면 눈물이 흐르는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가 된다. 스님들과 더욱 친밀해진다.

“연일 보도되는 ‘봉은사 사태’라는 활자화된 기사 앞에서 그저 빈 하늘만 응시합니다. (중략) 무명無名과 무소유無所有로 살아야 할 스님들의 모습이 유명과 소유의 나락에 있으면서도 길 잘못 든 수행자의 근원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때론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자세로, 아님 자기만의 깨달음만이 출가 본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중략)
스님, 이 시대의 아픔이 비단 저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기에 이제 초발심자의 수행인에게는 현실과 마주잡은 낡은 유물과의 악수를 아직도 끝낼 줄 모릅니다. 진정 우리는 ‘유명’과 ‘명예’로 얼마만큼의 물결무늬를 놓아야 하는 건가요?”
―본문 pp.135~137 중에서

1988년 어느 날 한 학인스님이 보낸 편지에서는 그 무렵 불교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떠올리게 한다. ‘봉은사 사태’가 신도뿐만 아니라 스님들에게도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알게 되면서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설움의 빛깔들이 밀려올 때면 그래도 희망처럼 솟아오르는 스님을 떠올립니다. 어떠한 말로도 그릴 수 없는 스님의 영혼의 강기슭에 묵묵히 침묵보다 진하게 손 흔들고 계신 스님을 바라봅니다. 영혼의 몸살을 앓는 우리들에게 슬픔을 이겨낸 뒤 더욱 아름답고 지고한 순정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이 시대의 스님의 삶의 지표 속에서 용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면서 일초 스님으로부터 희망을 찾고 새로운 용기를 발견했다는 학인스님의 편지를 대하면서 독자들 또한 그동안의 가슴앓이를 속 시원히 풀어낸다.

‘비구니스님들은 서로 어떤 내용의 편지를 주고받을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이 책을 열었다면, 한 편 두 편 읽어가는 동안 한 뼘 두 뼘 성숙해지는 스스로를 느끼게 될 것이다.
수행자의 고독과 고뇌와 깨달음을 향한 구도열과 타인을 향한 자비보살행에 대한 소망이 담긴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 것이다.